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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페이지의책]공정하다는 착각단 한페이지의 책 2021. 9. 12. 21:40반응형
공정하다는 착각_마이클샌델
#자신의 곤경은 자신 탓이라는 말, '하면된다'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불어 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준다. 승자에게 갈채하며 동시에 패자에게 조롱한다. 패자 스스로마저도 말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리고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게 된다.
#능력주의 이상의 어두운 면은 가장 매혹적인 약속, 즉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안에 숨어 있다. 이 약속은 견디기 힘든 부담을 준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신이 인간의 선에 상을, 악에 벌을 내리느라 눈코 뜰 새 없다는 것은 너무 인간중심적인 시각이다.
#신의 창조 또한 오직 인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주는 인간 중심적 시각으로 들여다 보기에는 너무 크며, 신의 뜻 역시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나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을 생겨나게 할 뿐만이 아니라.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즉 능력주의적 사고 방식에 적합한 윤리를 장려한다. 이런 윤리 의식은 큰 부를 축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책임과 함께, 자수성가의 어두운 면이라 볼 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을 초래한다. 은총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주었던 겸손함.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데서 나오는 오만으로 대체된다.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막스베버>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에 비해 '그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기를 바란다. 그는 또한 운이 나쁜 사람들도 자신의 당연한 업보일 뿐이라고 믿기를 바란다<막스베버>
#명철한 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기능을 갖춘 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때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다.
#저마다 가질 만한 것을 갖는다는 섭리론적 관념은 지금의 공적 담론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목소리는 두 종류다. 하나는 오만한 목소리, 또 하나는 징벌의 목소리다. 두 가지 다 우리 스스로 운명을 책임질 것을 강조하며, 성공도 실패도 자기 탓이라고 본다.
#도덕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마틴루터킹>
#야스차 뭉크의 지적처럼, 이제 책임이란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이자, 그렇게 못할 경우 겪게 될 고난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과반수의 미국인이 '인생 성공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말에 반대 한다. 반면 대부분의 유럽국가를 포함한 타국가 국민들 과반수는 성공이 자신의 통제 범위 밖의 변수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본다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거의 전부(90%)는 부모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1980년대 생은 겨우 절반이 부모보다 많이 벌어들인다. >사회적 이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찾는 시스템 틀 안에서는 교육 시스템의 책임이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불평등이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교육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교육이 이 사회의 다른 죄악들을 사면해주기를 바라며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능력주의의 이상이 재능의 우연성을 외면함으로써, 또한 노력의 중요성을 과장함으로써 도덕적 흠을 갖는다면 과연 다른 어떤 정의 개념이 대안일 수 있는지를 따져볼 때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서는 어떤 식으로 자유와 자격 문제에 접근하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하이에크>
#철학적으로 정의의 원칙이 능력, 미덕, 도덕적 자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롤스 자유주의의 보다 일반적인 주장의 일환이다. 바로 '옳음(사회 전체를 다스리는 의무와 권리의 틀)이 좋음(그 틀안에서 사람들이 각자 따르는 미덕과 좋은 삶의 다양한 개념들)에 앞서야 한다. 특정한 능력, 미덕, 도덕적 자격등을 인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와는 다른 '좋은 삶'의 개념 주장들에 대해 중립적일 수가 없다.
#롤스는 경제적 보상에 능력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역시 옳음과 좋음의 전도가 일어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자격에 보상하는 것을 첫번째 원칙으로 사회를 조직한다면, 도둑을 벌주기 위해 재산권 제도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능력과 업적이 찬양받을 만한가를 정하는 건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가치관이며 그것은 '좋음'의 영역이지 '옳음'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자유시장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모두 능력을 정의의 제일조건으로 배제하고 있지만, 둘 다 결국에는 능력주의로 기운다. 둘다 성공에 대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를 거르지 않으며, 능력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이라는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능력주의의 폭정을 극복한다는게, (중략) 대신 그것은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 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함을 뜻한다.
#"사회가 각자의 재능에 따라 사람들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선별하면, 루저들은 자신의 낮은 지위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임을 절감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입에 쓴 약이다."
#이런 능력주의적 군비 경쟁은 부유한 집안 쪽으로 전세를 기울인다. 그리고 부자 부모들이 스스로의 특권을 대물림하기 쉽게 해준다.
<물질적 풍요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는 법>
#완벽주의는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병폐이다. "젊은이들이 끝도없이 학교, 대학, 직장에 의해 선별되고, 구분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현대 생활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실적을 내고,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한다. 성취 요구에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개인의 능력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를 결정한다.
#능력주의의 금과 옥조인 '우리는 개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책임자다'라는 도덕률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가 잘한 덕이며, 실패하면 우리가 잘못한 탓이다. 사기를 올려주는 말 같지만, 개인 책임에 대한 집요한 강조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상승 추세에 대응할 연대 의식이나 연대 책임을 떠올리기 어렵게 한다.
#학생들이 공공 문제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줄 역사 과목 등도 중시하지 않는다. 대신 '가치 중립적'인 사회과학 과목들이 앞서 나가는 한편, 좁은 범위에다 고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강좌들이 늘고 있다. 덕분에 도덕 및 정치 철학에 관련된 큰 문제들을 따져볼 기회, 그리고 도덕 및 정치적 고정관념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해줄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능력을 지나치게 따지는 사회에서는 많은 재능을 무가치하게 평가하기가 쉽다. 하층계급이 이처럼 도덕적으로 취약해진 적은 없다
#모든 젊은이가 자신의 능력과 야심이 허용하는 한 성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의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은, 필요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언제나 고통은 존재하며, 존재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그들은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가 없어졌다. 남들의 시선과 개인적 명예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려면 뭔가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그리고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은 없는데도 뭔가 모를 이유로, 그들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GDP 증대에 중점을 두는 정책은 비록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동반되더라도, 생산보다 소비를 강조하게끔 했다. 따라서 우리는 생산자보다 소비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했다.물론 실제는 우리 정체성은 양쪽 모두다.
#"소비는 생산의 유일한 목표이자 의미다" "그리고 생산자의 이익 추구는 오로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 <애덤스미스>
#일은 시민들을 기여와 상호인정의 틀 안에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일은 그 최선에 있어 사회적 통합 활동이며 인정의 장이고, 공동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우리의 책임을 명예롭게 수행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단지 자동차나 높은 급여에 대한 꿈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질서의 꿈이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 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고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능력주의의 사회, 성공에 대한 착각, 그리고 태도
성공은 경제 시스템, 사회적 환경에서 이루어낸 것 오만에서오는 태도
우리가 갖춰시민의 덕은 겸손함을 회복하는 것.
능력에 우연과 운에서 오는 겸허함의 자각을 도입하자반응형'단 한페이지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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